박재식 선생님의 이 평론은 지금껏 수필을 써오면서 가장 아끼고 수시로 읽고 있는 이론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수필평론 중 이만큼 수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이론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이론을 통해 나름대로 내 안에서 수필을 정립하게 되었다.
몇 차례 나누어 싣는다.
수필의 문학성과 문체적 특성(1)
朴在植
1. 문학 수필의 과제
문학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다. 문학이 같은 언어를 표현 매체로 하는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것은 문학 작품이 갖는 문학적 예술성, 즉 문학성에 있다.
그러면 문학이 준거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번잡한 천착을 피해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적 가치의 창조와 표현 행위이다. 이것이 예술에 대한 사전적 해석의 공통 분모적 근본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문학성은 언어로 이루어지는 문장의 내용이나 표현 기법이 미적 가치의 창조와 표현의 요소를 지닌 특성이라고 우선 규정지을 수 있겠다. 물론 문학이 다른 예술과는 달라 그 표현 대상으로 삼는 세계의 방대함과 다양성에 비추어 이런 단순 논리만으로 문학성을 규정할 수는 없겠으나, 다른 비문학적인 문장으로부터 문학의 독자성을 인증하는 배타적인 기준으로는 가장 정곡을 얻는 기본 개념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비문학적인 문장, 이를테면 철학 논문이나 역사적 기록이 문학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적인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보다도 그 논문이나 기록에는 문학성 즉 미적 창조와 미적 표현이라는 예술적 기본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 뻔한 이치를 새삼스럽게 운위하는 까닭은 문학 중에서도 그 형식이 애매한 수필의 문학성을 모색하려고 하는 본고의 의도적인 수순에 불과하다. 왜냐면 수필은 문학과 문학 아닌 여타의 문장 사이에서 그 문학적인 지위가 매우 불안정한 장르로 다루어지고 또 그러한 통념과 양태에 의해 행세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수필적 문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명 인사나 인기인들의 비문학적인 자서전류와 신변 잡기가 수필집이라는 이름으로 독서계를 풍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정한 전문 지식의 피력이나 고사의 인용과 주석에 불과한 잡문류가 수필 작품이라고 지상에 나도는 것이 작금에 나타나고 있는 사이비 수필의 발호 현상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문학 영역으로서의 수필과 잡문 사이의 한계가 모호해지면서 마침내는 신문사의 신춘 문예 모집 대상에서 수필이 제외되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미술 평론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언론사의 신춘 문예가 그 대상에서 수필을 제외했다는 것은 수필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의 공공연한 표시로 볼 수밖에 없다. 미상불 그 진위를 따지는 어느 중진 수필가의 질의에 대해 신문사 당무자의 응답은 문학으로서의 전문성이 없다.는 것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 수필이므로 구태여 신춘 문예의 신인으로 수필가를 등용시킬 나위가 없다는 말일 터이다. 그러니까 특별히 문학적인 소양이나 수련 없이도 쓸 수 있는 글이 수필이라는 견해이다.
이와 같은 소견은 물론 문학 수필과 잡문성의 사이비 수필이 난장을 이루는 혼효 현상에서 옥석을 분간하지 못한 관찰의 산물이거니와, 그 책임은 다분이 수필 문단의 안이한 문학관과 형태에도 없지 않다. 즉 수필을 논함에 있어 수필이 갖는 무형식성과 제재(題材)의 다양성에서 오는 탈문학적인 성향을 무비판하게 확대 수용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가 하면, 수필이 자기 고백적인 사유의 문장이라는 성격에 의지하여 예술의 표징인 작품성을 도외시하고 치졸한 감상과 공소한 정서의 나열만을 일삼는 저질의 수필이 양산되고 있는 수필 문단의 현실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수필의 문학적인 지위를 정립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숱한 잡문성 문장으로부터 문학 수필의 독자적인 위상을 배타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될 듯하다. 앞서 철학 논문이나 역사적 기록은 문학성이 없기 때문에 문학(수필)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와 같은 과제를 논증하기 위한 상징적인 객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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