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형(兄)4

7154 2010. 6. 13. 13:35

형(兄)4



… 이즈음은 어둠이 내리면 두려움도 스며들기 시작한다.

어젯밤은 두 번씩이나 그가 순한 배변을 보았다. 지쳐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작은 위안이요, 희망이었으니 당신께 감사하다.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환자의 배변 하나가 생명의 비약(飛躍)처럼 우리에게는 절박하게 다가온다. 나의 당신은 형의 식욕을 일으켜 흐릿해져가는 영혼을 붙들게 하실 것이다. 이제는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악령의 세포가 퍼져 있다. 나의 당신은 이들의 해매를 물리치실 오직 한 분이다. 


 

3년 전 종양이 퍼져 두 번이나 죽음을 넘나드는 수술을 하였다. 그런데 또 다시 죽음의 씨앗들이 전이되어 그의 뇌를 짓누르는 모양이다. 수술 자국 난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혹이 드러나 보인다. 그의 목도 찬찬스럽게 살펴보니 양쪽 귀밑으로 새알만한 두 개의 혹이 불거져 있다. 그 때문인지 물마저도 잘 삼키지 못한 채 가끔 토할 때면 핏덩이가 묻어나온다. 그것은 곧 나의 피눈물이다. 그의 상체는 또 어떠한가. 오른 쪽 옆구리에는 엄지손가락 절반만한 멍울과 그 보다 작은 두 개의 멍울이 더 퍼져 있다. 왼 쪽 옆구리 또한 멍울 한 개가 더 자리했다. 그런 까닭으로 어제는 통증이 극심해 밤새 뒤척였다. 그 육신의 통증은 우리 가슴에서도 사방팔방 날것으로 날뛴다. 의사들은 장에도 이미 암세포가 퍼져 있다는 사위스러운 말을 전한다.


나의 당신에게 그의 팔다리도 쓸어주시길 간구한다. 왼 팔과 왼 다리의 뼈마디에도 그것들이 자름자름 퍼져 뼈마디가 녹아나는 것이다. 형은 처음 신경외과 병실에서 정형외과 병실로 또 다시 내과 병실로 옮겨 다녔다. 더는 꽃물로 치달아서는 아니 되는 형이다. 불치에서도 생명을 내는 분, 몸 구석구석 퍼진 독한 기운도 막는 분이 그 누구인가. 어떠한 약물도, 어떤 의사에게도 이제 희망은 사라졌다. 오직 나의 당신만이 희망이며 치유하실 분이다. 우리를 애련하게 받으실 당신, 우리의 소망과 기적이 일치하도록 작은 부활을 꿈꾸실 당신은 희망을 악착같이 붙든 우리를 어찌하실까. 나의 당신과 사랑이 회복되기를 원하지만 당신은 우리의 부족함으로 목이 마르다. 검불처럼 후르르 타버릴 우리의 의지는 그저 당신을 향해 목다심을 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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