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형(兄)5.

7154 2010. 6. 15. 13:05

 

형(兄)5.


 

 

 

……열이 올라서인지 윗도리 단추를 풀어 헤친다. 팔과 다리도 저린 모양이다. 자주 팔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는데 겉으로는 편안한 수면처럼 보인다. 언제 또 지통(至痛)이 발광할지 모르지만 지금 상태가 진통제의 약효가 아닌 당신의 자애로운 은총이시길 간절히 바란다. 이마의 물수건을 번갈아 갈아주며 살점 없는 팔다리를 주물러주는데 오늘은 호흡이 골라서 일반 환자처럼 보인다.

만인에게 지극하신 당신이니 염주를 든 내 어머니도 안으실 것이다. 살아오는 내내 가시 돋친 멍에를 걸머져 상처투성이인 영혼이다. 서른아홉 때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평생 고난을 치장하며 질긋질긋 살아온 세월이 전부이다. 웃음보다 울음이 더 친숙한 어머니에게는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불과 1년 전 누이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형제 가운데 당신을 가장 사랑하며 흠숭하며 순종한 딸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서 여리고 인정스러운 심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효심 또한 깊었던 누이는 여의치 못한 형편에서도 다른 형제를 먼저 챙겼다. 나에게는 마치 누나 같았던 여동생은 가난해도 행복을 가꿀 줄 알았다. 그런데 술 취한 운전자가 교회 다녀오던 누이를 횡단보도에서 들이받고는 뺑소니를 놓았다. 이후로 온 가족의 가슴을 도려내며 꼬박 3개월 동안 중환자실에서 식물인간인 채 지냈다. 사람으로 태어나 차마 느껴서는 안 될 고통을 부리다가 끝내 당신 곁으로, 어머니의 가슴으로 갔다. 어머니는 석 달간 죽어가는 딸을 날마다 흐르는 눈물로 씻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나던 날 밤 꿈을 꾸었다. 진달래 핀 나뭇길을 홀로 걷던 꿈속의 누이가 몹시 외롭게 보여 지금도 어제 본 듯 생생하다. 형조차 사경을 헤매며 누워있는 지금, 어느 누가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을까. 어머니보다 한 발치 떨어진 나도 영혼이 해체된 듯 비틀거리는데 하물며 가엾은 어머니는….

어머니가 기댈 수 있도록 빛의 기둥을 내리셨으면 한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인 어머니에게 온 몸 구석구석 두드러기가 발진하였다. 나의 당신은 이처럼 허약해진 어머니를 강건하게 추슬러 지금의 슬픔을 무심히 넘기도록 하실 것이다. 스스로는 억누를 수 없을 심정을 무디게 하여 어머니의 영혼을 지켜주실 당신이다.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의 주머니를 끝내 어머니에게도 열어주실 나의 당신이다.……

 

*적바림

1999년 형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뇌종양으로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살이 쌈박쌈박 베이는 기분입니다. 그때 이 땅에서 밴 고통이 여태껏 하늘에서도 남아 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을 합니다. 지난 병상일기를 꺼내 다시 정리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는 이 글 한 편 한 편은, 이 땅의 그것들이 하늘에서는 깨끗이 씻어져 우리는 감히 꿈꾸지 못할 하늘의 행복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나의 기도입니다. 나의 당신께 부복하여 바라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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