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을 잃은 꼬실이(2)

7154 2011. 1. 28. 18:32

 

 

 

 

꼬실이 시력을 잃다(2)

 


자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어나 앉아 있는 경우를 자주 대한다. 멍하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은 그 시야만큼이나 텅 비어 보인다. 그걸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만약 내가 시력을 잃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무엇이든 눈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하는 내가 앞이 보이지 않으면 달리 무엇을 하고 살까. 그래도 음악을 듣고 귀로 뉴스를 듣겠지만 굳이 눈이 쓰이지 않아도 될 것들마저 죄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질 것이다. CD 타이틀이 보고 싶을 거고, 아나운서 머리 모양도 궁금할 거고, 화면 아래 흐를 자막도 읽고 싶어질 것이다.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고 해서 눈으로 감지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는 마음이 얼른 들어설 리 만무다. 그러니 녀석의 허전한 표정 앞에서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으니까 꼭 붙어 있으려고 한다. 가뜩이나 무릎을 밝히던 녀석이 잠시도 우리 체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매달린다. 이른 아침부터 종종거리는 내 일상을 기억하는 녀석이 겨우 한시름 놓고 셈틀 앞에 앉으면 귀신같이 알고는 다가와 다리를 긁는다. 비로소 저를 안아달라는 몸짓이다. 그 녀석을 무릎에 올려놓고 무엇을 한다는 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자세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이내 불편하다고 꿍얼 투덜대면서 제 몸을 바꿔 눕느라 꼼틀댄다.

그래, 지금 읽지 않고 보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급한 것 없고 절실한 것 없다. 어떤 것인들 설마하니 네 불안에 대겠느냐. 어쩌면 몇 달, 길어야 몇 해뿐일 네 시간에 비하면야 적어도 내 시간은 널널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만 없다면 네가 가진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내게는 있다. 지금은 너를 안심시켜 주는 일, 너를 편안하고 나른하게 행복하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리라.

-김은미 반려견 수필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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