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을 잃은 꼬실이(4)

7154 2011. 1. 30. 12:34

 

 

 

 

시력을 잃은 꼬실이(4)

 

 



킁킁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는 걸 보고 냉큼 물그릇을 밀어준다.

코끝에 그릇이 닿으면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가 다른 데로 몇 바퀴 더 돌고 이윽고 물그릇으로 다가가 마신다. 그걸 보고 나는 웃는다.

녀석은 반년 전에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백내장이 원인이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제 평생에 익숙한 집안을 돌아다니는 데는 큰 지장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두 달 전부터 청각과 후각에도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불러도 반응이 없고, 우리가 고기를 먹어도 달라고 팔을 긁는 일이 없어졌다.

세 가지 중요한 감각을 잃은 녀석은 이제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여기 콩 저기 콩 박고 구르고 떨어지면서 구슬프게 운다. 그 우는 소리는 아파 우는 소리라기보다 화를 내는 소리만 같아서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런데도 물그릇 밥그릇을 디밀면 우선 몇 걸음 물러나고 본다. 엉뚱한 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기어이 저 스스로 찾아가서 마시고 먹는, 즉 자기 힘으로 그릇을 찾으려는 고집이 있다.

화장실을 미처 못 찾아서 근처를 뱅뱅 돌다 문 근처에 질펀하게 싸놓는다. 그거 닦는 거야 일도 아니다. 꼭 방에서 나가 화장실을 찾으려는 그 고집이면 충분히 되지 않는가.

 

십 년 전에 녀석이 슬개골이 탈구되어 수술을 한 후에 뛰어 오르내리는 게 실내견 무릎에 안 좋다는 걸 알고는 침대 다리를 몽땅 잘라 버렸다. 그러니까 매트만 달랑 있는 침대 높이는 20센티 남짓이다. 1미터 이상을 가볍게 오르내리던 녀석한테는 그것은 높이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매트 끝에 서서 우는 소리에 번번이 잠을 깨는 한밤중이 거의 매일 되풀이된다. 오줌이 마렵다는 것이다. 그럭저럭 혼자 내려가서 나를 깨우지 않았어도 이번에는 문을 찾아 나가는데 여기저기 콩콩 박고 우는 소리에 결국은 눈을 뜨고 만다.

 

“그냥 방에서 눠도 돼, 부딪히면서 꼭 그렇게 나가지 않아도 돼.”

물론 절대 말을 듣지 않는다.

 


-김은미 반려견 수필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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