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을 잃은 꼬실이(9)

7154 2011. 2. 2. 10:49

 

 

 

시력을 잃은 꼬실이(9)

 

 

 

 

4년 전에 우리 꼬실이 주견등록증을 만들어줬다.

내 주민등록증을 스캔 받아서 안에 있는 내용을 싹 지우고 새로 고쳐 쓴 것. 사진 찍어 증명사진 만들고 지문 대신 코의 비문(鼻紋)을 찍어 사진 파일로 만들어 붙이고, 동호회 도장도 파서 꽝 찍었다.

 

주견등록번호는, 생년월일을 그대로 쓰고 뒤의 것은 임의로(지금은 바뀐 당시 내 전화번호를 포함시켜서) 붙였다. 그것을 딱 맞는 크기로 인쇄해 코팅한 것 몇 장을 지갑에도 넣고, 이동가방 주머니에도 넣고, 그리고 차 앞에 그걸 꽂아놓고 다닌다. 내일이 요 녀석 만 16살 되는 생일. 오늘 새삼스럽게 주견등록증 들여다본다.

 

 

꼬실이 치아 때문에 여전히 걱정이다.

어려서부터 사나흘에 한 번은 이를 닦아주고 1년에 한 번씩 스케일링도 꼬박꼬박 해주었다. 도무지 껌이라곤 씹지 않는 녀석 때문에 노심초사, 일부러 개 껌을 내가 한참 물고 있어 침으로 불려주거나 분유가루를 살짝 묻혀 주기도 해봤지만 처음 잠깐만 입에 댈 뿐 물어뜯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껌뿐 아니라 무엇이든 갉작거리는 적이 없었고, 다른 개들이 그러하듯 앞발로 꼭 움켜쥐고 물어뜯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서랍장 손잡이를 핥을 때 호되게 혼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 효과가 주효했는지 그 후 절대로 먹는 것 외에는 입에 대지 않는다. 차라리 그때 그냥 놔둘 걸, 그래서 문짝이건 구두건 이것저것 물고 갉고 하게 둘 걸, 뒤늦게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아무튼 워낙 싫어하니까 기운을 잃은 최근 한두 해는 측은해서 칫솔질을 조금 뜸하게 했다. 이를 닦느라고 씨름을 하고 나면 눈도 벌게지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듯해서였다. 나도 참 미련하지. 평생 안 하던 짓도 나이 들면 더 철저하게 해야 하거늘 마음 약하게 져 줬던 게 잘못인 게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노화는 보일 듯 말 듯 오는 예도 있지만 대개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아버지를 느꼈듯이 꼬실이도 갑자기 늙은 개가 된 것 같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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