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5)

7154 2011. 2. 6. 20:32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5)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이웃마을 당산을 사람들은 등마당이라 불렀다. 이 등마당을 넘어와 우리 동네 들머리로 이어진 둑길을 따라 갯바닥으로 나간 이웃마을 여자들은, 여름 한나절 쏙이나 맛 또는 게를 잡거나 *썹서구를 채취하여 해거름이면 다시 둑길을 따라 줄을 지어 돌아왔다. 거기에는 열일곱 살 난 누나가 있었다.

 

누나가 바닷가에서 돌아올 즈음 나는 둑으로 나가 서성대며,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개펄에서 휘적휘적할 누나를 밀물이 뭍으로 얼른 밀어내주기를 바랐다. 마당에서 멀리 펼쳐진 갯바닥을 바라보면 밀물이 들어오는 기세가 서서히 꿈틀대던 때였다.

 

 

개펄을 뒤집어써 온몸이 시커멓던 누나는 집 앞 둑에서 얼쩡대는 나에게 맛이나 쏙 몇 마리씩을 단지에서 꺼내주었다.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옷으로 주둥이를 틀어막은 단지 안에서는 쏙과 게가 뒤엉켜 비릿한 바닷냄새를 풍기며 연방 바스락거렸다. 개펄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누나는 그 가운데 제법 튼실한 놈으로만 골라주었다. 갯것을 건네며 함박만 하게 짓던 누나의 미소는 개펄 묻은 시커먼 얼굴에서 더욱 하얗게 빛이 났다. 코 밑을 스치던 누나의 짠 냄새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쏙과 맛을 아궁이의 불로 구워먹으며 또 다음 날을 헤아렸다.

 

 

내가 여덟 살 때쯤이었을까. 이웃집에서 살다가 갑자기 이웃마을로 이사해버린 누나가 거미가 내릴 무렵이면 허기지도록 보고 싶었다. 어떤 날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으며 갯바닥으로 나간 누나를 기다렸다. 슬픈 표정을 지으면 누나가 더 오래 머무르며 옆집에서 살 때처럼 살갑게 다독여줄 것 같았다. 그러나 무심한 누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야단이라도 맞은 양 엉덩이를 한두 번 토닥일 뿐 쏙과 맛을 꺼내주고는 총총히 일행을 쫓아갔다. 바삐 가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아는지라 누나의 뒤태는 늘 짠해 보였다. (누나1)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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