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7)

7154 2011. 2. 8. 15:31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7)

 

 

 

 

 

 

 

 

자식을 앞세운 죄인이라며 외출은 고사하고 전화조차 손사래 치던 당신이다. 저러다 당신마저 뒤따라가는가 싶어 덜컹 가슴이 무너지곤 할 뿐, 남아 있는 자식의 어떠한 말도 당신에게 위안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저 매일 퉁퉁 부은 당신의 눈을 안타까이 바라볼 수밖에는….

 

밥을 물에 말아 먹기 시작하던 어느 날부터 당신은 조금씩 텃밭으로 배착걸음을 떼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또 무얼 심는지 궁금해하는 한마디가 굳게 닫힌 말문을 조금씩 풀어놓았고, 텃밭의 애정이 움터오면서 차츰 푸성귀가 들어찼다. 메마른 억새 사이로 서러운 바람만 흐르던 당신의 숲에도 서서히 갈맷빛이 돋아난 것이다.

 

 며칠간 부산을 여행 중인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고 전화를 걸어온다. 근래 봄 가뭄이 심해 텃밭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고추모와 열무 그리고 감자나 방울토마토에는 물을 자주 뿌려주란다. 한소끔 솎아내면 금세 차오르는 상추도 자주 뜯어내라 하며 옆집 재윤이 엄마에게도 속아가라고 하란다.

 

 동살이 틀 무렵, 어머니의 텃밭에 서서 물을 뿌렸다. 아무나 뜯어갈 수 있는 남새들이지만 생명을 가꾸는 일이었다. 몽글몽글한 흙이 밟힌 이 작은 땅덩이가 자식이 할 수 없는 일을 묵묵히 도맡아 한 듯하다. 오롯이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때로는 그리움의 땅으로, 때로는 망각의 땅으로 자리매김하며 어머니를 지켜냈던 것이다.

 

어느 해보다 채소들이 시퍼렇게 물이 올랐다. 어쩌면 당신의 절골지통(折骨之痛)이 생명을 품은 흙으로 전해져 텃밭의 땅이 당신을 위로하는 푸른 채소들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자식 잃은 슬픔을 이 텃밭이 풀어 받았을까 싶어 가뭄에 목말라할 근처의 풀포기조차 흥건히 적셔주면서, 생명이 생명을 낳고 생명이 생명을 치유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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