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4)

7154 2011. 2. 5. 11:25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4)

 

 

 

 

…… 공사 현장을 지나자 폐부로 파고드는 토향이 아찔하다. 아스팔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추진 흙살이 주톳빛을 드러내며 뭉켜 있다. 향기로운 흙내를 잊은 채 나는 한동안 아버지를 도시의 아스팔트처럼 밟고 살았다. 

 

 

 사후 세계는 모를지라도 산 자와 죽은 자의 교감을 믿는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일 년이면 두어 번이나 떠올렸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와 아들은 플라타너스 표피처럼 푸석하게 돌아섰다. 명절이나 휴가철,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면 산소부터 다녀오라는 노모의 성화가 빗발쳤다. 때로는 그 성가신 성화로 짜증이 났다. 마지못해 산소를 찾아도 과일 한 조각 곁들인 소주잔만 올려놓은 채 흙이 묻을까 자리를 살피며 무릎을 꿇었다. 당신의 여운은 아스팔트 아래 토향처럼 잊혀, 무덤덤하게 봉분을 바라볼 뿐 풋낯인 듯 침묵하며 서성대다가 한숨 한 번 내쉬고는 이내 발길을 돌렸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세상을 등진 아버지, 그 어령칙한 기억조차 일부러 밀쳐내기 시작한 지는 사십 중반의 형과 서른 중반 여동생이 세상을 뜬 이후였다. 춘사(椿事)로부터 두 형제를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조상, 아버지를 깊이 묻으면 묻을수록 원망은 노송의 껍질처럼 덕지덕지 붙어 무밥이나 김치죽으로 연명케 하던 유년의 세월마저 어제 일인 듯 씁쓸하게 다가왔다.

 

 당시 꿈을 꿀 때마다 몸속의 피가 절반쯤 빠진 듯한 나는 두려움으로 몹시 절어 있었다. …… (부정父情)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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