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6)

7154 2011. 2. 7. 11:16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6)

 

 

 

 

 

 

시골사람답지 않게 누나는 하얀 피부와 단아한 용모를 지녔으나 늘 죄지은 사람처럼 다소곳하거나 어딘가 허전한 표정이었다. 누나가 데리고 온 대여섯 살 사내아이는 어찌나 온순한지 볼수록 정이 느껴져 녀석이 떠나고 난 후 한동안 가슴이 아렸다.

 

 

마을 들머리인 당산 모퉁이에는 우리 집과 또 한 채의 집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이웃집은 이사가 잦았다. 우리는 그 집에서 네 번의 새로운 이웃을 맞이하며 살았다. 이웃집에도 대문이 있었지만 그들은 주로 우리 집 뒤안길로 넘어와 우리 사립문을 통해 동네로 들어가곤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사립문 그늘에 앉아 있으면 누나는 한 손으로 긴 치마를 살며시 접은 다음 목례를 하며 어른들 등 뒤로 비켜 지나갔다. 어쩔 수 없이 어른들 앞으로 지나쳐야 할 때면 누나는 들릴 듯 말듯 “잠시 지나가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한 후 여전히 치마를 접은 채 사뿐사뿐 지나갔다. 누나의 아버지가 앉아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 앞에서 행여 치마라도 펄럭일까 봐 지극히 조심스러워 하던 누나의 자태는 귀부인처럼 고와 보였다.

 

 

왜 친정에서 지내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던 누나는 얼마 후 내가 다니던 중학교 입구로 아이와 함께 이사를 하였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오던 어느 날 학교 정문에서 서성대는 누나를 보았다. 까만 교복차림의 고만고만한 1학년 아이들 틈새에서 용케도 금방 나를 발견한 누나는 내 소매를 붙들고 집으로 데려갔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간 나에게 누나는 따뜻한 수제비 한 그릇을 내놓았다. 그토록 지겹던 수제비가 누나 앞에서는 게 눈 감추듯 비워졌다. 누나의 아들은 수제비를 먹는 나를 웃을 듯 말 듯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내가 누나 집을 나설 때면 얼굴을 실룩대며 울먹거렸다.   

 

 

재혼을 하여 충청도 어딘가로 떠나기 전까지 누나는 종종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국수를 또 어떤 날은 수제비를 차려주며 수업이 끝날 무렵의 허기를 가시게 해주었다. 그리고 어느 틈에 발견하였는지 헐렁해진 교복 단추를 홀쳐주거나 터진 호주머니를 기워주기도 했다. 당시 누나에게 느껴지던 정은 눈물이 나도록 포근한 것이었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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