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11)

7154 2011. 2. 12. 18:33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11)

 

 

 

 

 

겨울 하늘이 축축한 회색 구름으로 짙은 날, 소래 포구 인근의 폐염전을 들어섰다.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고나 할까, 마음이 쓸쓸할 때 종종 찾는 곳이다. 지열처럼 마른 빛을 품어대는 이 수 만평의 푸서리에 들어서면 황폐한 서정이 처절하다. 용케도 버티고 선 소금창고들과 삭정이가 된 함초와 갈대 사이를 걷노라면 세상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 든다.

 

 

햇살 여읜 하늘은 하 수심하였다. 슬쩍 쳐다보아도 우울증을 앓을 듯한 하늘 아래서 갈대 이파리를 자그럽게 흔들며 바람은 골저리도록 불어댔다. 의지할 곳도 살아 움직이는 것도 없는, 오직 서리치는 바람만이 보이는 듯하다. 벌판을 마음껏 짓밟고 다니는 이 냉혹한 짐승은 갈대와 함초들을 뿌리째 말리려나 보다. 바싹바싹 타들어간 그들이 지난날의 푸르렀던 시간을 기억이나 할는지 의문이다. 벌판 중간쯤 걷다 보니 답답하고 목이 말랐다. 더 머물다가는 온몸의 피마저 갈색 벌판으로 빠져나가지 싶었다. 생의 난간으로 다가선 심경이라면 이런 것일까.

 

 

기둥 하나 툭 차면 금세 쓰러질 소금창고로 들어가자 죽음 같은 냉기가 흘렀다. 지칠 대로 지쳐 더 버틸 힘이 없어 보인 창고 안에는 판자가 뜯겨나간 구멍 사이로 바람이 냉갈령스럽게 지나갔다.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양철쪼가리들…. 바람이 그들을 흔들어댈 때마다 찌그러진 신음이 울렸다. 창고에 머물러 있자니 발만 동동 구르며 꺼져 가는 생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호스피스 병실이나 중중환자들의 보호자 대기실이 떠올라 얼른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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