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13)_엄마 엄마 나 죽으면

7154 2011. 2. 13. 23:59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13)

_엄마 엄마 나 죽으면

 

 

          

 

 

 산새들의 물오른 교성이 동네를 휘돌아다닐 즘, 세 살 난 성희는 ‘백일기침’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그날 내가 왜 집에 있었는지는 상막한 과거이다. 아마, 아픈 동생을 핑계로 조퇴를 하였지 싶은데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여동생과 성희를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성희의 몸이 변스러웠다. 술 마신 아이의 얼굴처럼 붉은 열이 활활 번지면서 붓으로 그린 듯 동그랗던 눈에는 흰 동자가 크게 보이곤 해 더럭 겁이 났다. 성희를 들쳐 없고 여동생을 걸려서 어머니가 모내기를 하던 이웃 마을 고개를 넘어갔다. 가는 동안 성희는 축 늘어지기 시작해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가 하면, 몸이 점점 쳐져 대롱거리는 성희의 두 다리가 허벅지에서 거치적거렸다. 성희는 그렇게 내 등에 업힌 채 거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자, 저’하는 들판의 못 줄 떼는 소리를 배고프게 듣고 있었다.

 

 개똥벌레가 어둠을 긋고 다니는 여름밤이면, 이웃집 녀석들과 주로 집 앞 뚝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여기 좀 보라며 귀를 잡아당기는 것도 아니거늘 나는 애써 고개에 힘을 주어 집 뒷산을 외면했다. 거기에는 항아리에 든 성희가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비라도 내리는 밤이면 성희의 울음소리가 들리던 내 의식 속에는 당시?클레멘타인? 곡을 붙여 즐겨 부르던 구전동요가 늘 맴돌았다.

 

 

 엄마 엄마 나 죽으면, 앞산에다 묻어 주/음지 밭에 묻지 말고, 양지 밭에 묻어 주/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 주/내 친구들 찾아오면, 죽었단 말 하지마.

 

 

 가수들이 곡을 붙여 부르기도 한 4․4/4․3조 가락의 이 동요는 지역마다 가사가 좀 차이가 있다. 어릴 적 성희의 죽음으로 이 노래가 더 깊이 새겨져 ‘클레멘타인’을 떠올리면 ‘넓고 넓은 바닷가에’가 아니라 ‘엄마 엄마 나 죽으면’이라는 가사가 지금도 더 귀에 익은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여동생과 형이 어머니 앞에 또 세상을 뜨게 되어 이래저래 이 동요는 우리 가족의 어두운 정서와 맞물려 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 실제 있었다면 몇 살이나 되었을까. 아무래도 성희 또래는 아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 보다, 자존심 강하고 예민하며 예뻐 보이려 깔끔히 멋을 떠는 열 대 여섯 소녀의 감성을 엿본다. 친구들에게 동정받기 싫어 자기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거나, 자신의 무덤이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눈비를 막아달라는 가사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춘기 소녀를 떠올렸다.

뒷산보다는 앞산에 묻히고 싶다는 소녀는 죽어서도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기가 싫었던 모양이고 건너편에서 날마다 가엾은 엄마를 바라보고자 했던 것 같다. 따뜻한 햇볕이 그리울 정도로 오랫동안 앓아온 탓인지 무엇보다 소녀는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이다.

 

 죽음이 예비하면 보통 사람은 얼마간 흔들린다. 언젠가 호스피스 병실에서 좀 더 살고 싶어 하는 팔십 세 노 수녀님을 보았다. 평생 수도자의 길을 걸어도 죽음 직전에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날이 밝으면 처형될 처지를 알았던 예수님도 제자들이 모두 잠든 사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피땀 흘려 기도를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어린 소녀가 죽음을 맞이해 어지간히 두렵기도 할 텐데 이 가사에서는 침착하게 엄마와의 끈을 이어가려 한다. 소녀의 마음을 꼼꼼히 되짚어 보면, 눈비를 핑계 삼아 살아있는 것처럼 엄마를 부름으로써 슬픔을 덜어주려는 배려도 묻어난다. 만일 이 의젓한 소녀가 엄마에게 위로하는 말을 남겼다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울보쟁이 우리 엄마, 먼저 가서 미안해/아픔 없는 세상으로, 당신 딸은 간다네/내가 살지 못한 세상, 대신해서 살다 와/앞산에서 지켜보며, 엄마 곁에 있겠네.

 

 

가족력(家族歷) 때문인지 나는 종종 어디가 아프면 큰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이대로 죽게 되나 한번쯤 고민을 하면서 두 가지의 바람을 갖는다. 그 두 번째는 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요, 첫째는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노모보다 세상을 먼저 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식을 먼저 보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데 내 어찌 그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분홍스웨터 곱게 입고, 산길 가던 우리 딸/이별이라 암시하듯, 꿈속에서 보았네/풀잎처럼 약한 아이, 혼자 보내 어쩔꼬/못난 어미 뒤따르게, 쉬엄쉬엄 가거라.

 

몇 해 전, 어린 두 아이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난 누이는 그날 밤 꿈속에서 분홍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따스한 산길에 앉아 있었다. 그 멀고 외로운 길 어찌 갔을까 싶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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