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 잃은 꼬실이(18)_마지막 함께한 1년

7154 2011. 2. 12. 18:42

 

 

 

시력 잃은 꼬실이(18)

_마지막 함께한 1년

 

 

 

저녁밥 먹고 설거지하고 거실에 털썩 앉아 잠시 TV를 보았다. 아니 잠시가 아니라 아마 30분쯤 보았던 것 같다. 문득 옆자리가 허전했다. 그러고 보니까 집에 들어서서부터 꼬실이가 내 곁에 있질 않았다.

‘누나가 데리고 있나.’

끄응 몸을 일으켜 서재를 들여다보았지만, 딸은 레포트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 딸 무릎 위에도 의자 뒤에도 옆 의자에도 꼬실이가 없다.

 

얘가 어딨지 하며 서재에서 나오다 딱 멈췄다. 저만치 화장실 앞, 그것도 벽을 보고 서 있는 꼬실이 뒷모습. 언제부터 저렇게 서 있었던 걸까. 아마 밥 먹고 나서 죽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밥 먹을 때 녀석에게도 밥을 줘서 맛있게 먹는 걸 봤다. 그 다음에는, 생각이 안 난다. 나는 설거지, 딸은 레포트, 그렇게 흩어지면서 그만 꼬실이를 둘 다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러니 저는 밥 먹고 돌아서 몇 걸음 걷다가 우연히 벽과 마주치자 어디로 갈 바를 몰라 그렇게 서 있는 게다.

 

가끔 있는 일이다. 그때마다 안아서 조금만 옮겨주면 비로소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익숙한지 이쪽으로 몇 걸음 저쪽으로 몇 걸음 우왕좌왕 하면서도 제가 갈 데를 찾아 나서곤 한다. 지금도 바로 그 몇 걸음 익숙한 바닥을 찾지 못해 얼어붙어 버렸을 텐데, 그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막막하고만 말았을까,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이상스러웠나, 관심 없음이 원망스러울까, 그 꼴이 된 스스로를 민망해 하다 좌절해 있을까.

 

마음이 아코디언처럼 착착착 접히면서 털퍽 주저앉았다. 무릎걸음으로 막둥이에게 기어가 당겨 안으니 꾸웅 슬픈 소리를 내며 가슴에 기대 머리를 내 턱 아래 집어넣고 살살 비볐다.

‘미안하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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