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31)_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7154 2011. 2. 27. 18:54

 

 

 

꼬실이(31)_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차라리 어서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 되었다.

열여덟 살, 개에겐 적지 않은 나이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나이다. 하지만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 가지 감각만 빼면 아무 이상도 없는, 이 하나 빠지지 않은 녀석이 당장 죽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죽었으면 싶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워할 것만 같았다. 지금 한 번 슬프고 말면 될 것을 두고두고 미워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게 녀석을 죽일 용기는 없다. 권리도 없다. 차라리 차를 빼 아무 데나 달려가다 쾅 박고 둘이 같이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녀석이 죽고 나면 내가 못 살 것 같으니 아예 같이 죽어 버릴까 한 것이다. 그렇게 해괴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설사 울지 않더라도 그 작은 몸을 덜덜 떨어대 소리가 들릴 지경이던 것에 대면 너무 조용했다. 고개를 들어 꼬실이를 살폈다. 마치 내 앞에서 자기를 감추려는 듯 한껏 동그랗게 옹크리고 누워 보이지 않는 눈을 빤히 뜨고 있는 녀석은, 놀라서일까 노여워서일까 더 이상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당겨 안았다. 따스했다.

 

‘미안해. 엄니가 미쳤지,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소리를 쳤단 말이니. 어떻게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잠시인들 생각했단 말이니. 너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평화로웠고 행복했는데, 지금 누구보다도 네가 제일 답답하고 괴로울 것이겠구만, 멀쩡하게 보이고 듣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 내가 어떻게 너한테 힘들다고 악을 쓴단 말이니. 미안해. 엄니가 잘못 했어. 아프지 말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같이 살자. 그래도 엄니보다 오래 살아선 안 돼. 내가 네 죽음을 지켜줄 거야. 오래 앓지 말고 편히 죽도록 지켜줄 거야. 어머니가 하도 우울해서 너한테 기분풀이를 한 거니까 고깝게 생각하지 마, 응?’

 

중얼중얼 변명을 늘어놓자 마음이 풀렸는지 다시 가늘게 떨기 시작하면서 꾸웅,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아 넣었다.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으면 떠는 것까지 못 했을까 싶어 짠했다. 이내 상황은 끝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무사히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출발했다. 녀석을 얼른 안심시키려면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밤길이라 차가 뜸했다. 바람처럼 돌아오는 한 시간 반 동안 녀석은 절대 울지 않았다. 내가 부린 히스테리가 가슴에 깊이 새겨진 모양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내 모습이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쉬야를 아주 오래 아주 많이 누었다. 아까부터 그렇게 오줌이 마려웠나 본데 낯선 환경에서 쉬이 나오지 않아 종종종 돌아다니기만 했던 모양이다. 그걸 참고 기다려 주지 못하고 춥다는 이유를 대 냉큼 안아 들고 했던 거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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