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3)

7154 2011. 3. 7. 09:04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3)

 

 

 

 고시준비 한답시고 타지(他地)를 떠돌다가 집에서 잠시 머물던 어느 날, 형이 오후 늦게 전화를 걸어왔다. 소주나 한잔하자며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직장이 있는 명동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다섯 살 나이 차이에도 형과 나는 서로에게 절친한 친구처럼 흉금을 털어놓는다. 그날도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버스를 놓쳐버렸다. 택시가 오면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걸하듯 달라붙었다. 운 좋게 우리가 선점한 택시에는 오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함께 탔다.

 

둘이서 술을 마시면 형은 종종 아우가 되었다. 마치 윗사람 대하듯 형은 내가 하는 이야기에 예를 다하여 귀 기울이는 것이다. 형이라고 하여 나에게 권위를 내세우는 일이 없었다. 반면 나는 지금도 불혹 중반인 동생에게 늘 일방적이다. 형과 이야기를 하면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형도 나도 술이 그야말로 술술 들어갔다.

 

적잖은 술기운과 훈훈한 난방 탓인지 택시 안에서 형은 고개 숙인 해바라기처럼 금세 잠이 들었다. 술기운이라기보다, 아버지 없는 가정의 가장으로서 오랫동안 힘겨운 삶들을 짊어진 그의 맛문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맞벌이를 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내 고시준비 뒷바라지를 해주는 형이었다.

 

형의 고개는 함께 탄 손님의 어깨로 염치없이 기울어 갔다. 그때마다 나는 미안해하며 가만히 내 쪽으로 형을 당겨왔다. 약간의 취기로 줄곧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손님은 얼마 지나서 우리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장난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두 분이 형제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자 대뜸 내 팔을 달라고 했다. 무엇 때문인지 알았지만 쑥스러워 주춤하는 사이, 그가 내 팔을 끌어당겨 조심스럽게 형의 팔베개를 만들어 안아주도록 하는 것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곤하게 잠든 형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윗사람인 형을 남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럼없이 안아주기란 시골풍의 나로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게 안겨 아이처럼 잠든 형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고는 오죽 보기 좋으냐며 싱긋이 웃었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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