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5)

7154 2011. 3. 9. 11:21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5)

 

 

사실 뺑소니 운전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붓끝이 흔들린다.

‘가족이 붙어 있을 수 없는 중환자실, 그 음습한 곳에서 짧은 면회가 끝나면 죽음처럼 느꼈을 긴 밤의 두려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만 가득 채우던 순간들… 도무지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아득함….’

 

가엾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 풀물처럼 밴 하얀 날들이었다.

여동생이 떠오를 때마다 순간순간 오죽 아팠을까 싶어 나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 가족을 무참히 파괴한 그에게 분노가 끓어 술로 꼬박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심장이 끓어오를수록 한편으로는 그 목사 부부에게 또 다른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의 진정한 소금이요, 빛이 되고자 하는 등경 위에 어둠의 됫박을 씌우는 게 아닌가 싶었다. 비록 검찰에서든 법원에서든 필요로 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었겠는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명절은 다가왔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친정이라 찾아오던 흔적이 어른거려 한동안 잠잠하던 증오가 연휴 내내 붉으락푸르락 솟아올랐다. 때린 놈 길은 갓길이요, 맞은 놈은 가운데로 간다지만 지난 일은 잊어버린 채 명절이라 하여 웃고 떠들며 지낼 그를 상상하니 천불이 나서 연거푸 낮 술잔을 기울였다. 그에게는 과거완료일 수 있겠으나 우리에겐 여전히 현재진행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N 목사 부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젠 신원(伸冤)하십시오. 그러기를 당신의 딸이기를 바랐던 누이의 마음일 것이고 그래야 평화를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해야 하는가.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도 여동생은 서른일곱으로만 남아있을 것을.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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