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4)

7154 2011. 3. 8. 09:44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4)

 

 

  풀잎 이슬이 눈물로 보일 때가 여러 날이었다.

볕 좋은 날이면 내가 아주 먼 나라로 도망쳐 와있는 것 같았다. 차라리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날마다 천둥번개를 치며 작달비라도 쏟아졌으면 싶었다.

세상 일 가운데 때로는 은사죽음이 되는 일도 있으나 우리 가족에겐 정녕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날 저녁 수원에 사는 여동생한테 전화를 받았다. 매년 시험을 보기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와 몸은 괜찮으냐, 마지막 정리는 잘했느냐, 긴장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보라는 둥 마치 저가 누나라도 되는 양 격려를 해주던 여동생이다. 그런데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날따라 시험 이틀 전 미리 전화를 해온 것이다. 당시 나는 사법시험 준비를 잠시 미룬 채 방향을 틀어 법원사무관 시험을 볼 요량이었는데 오빠라 부르는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일요일 오후, 시험을 치른 나는 곧장 집으로 가면 될 것을 어쩐지 동네 전철역에서 전화를 하고 싶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바로 수원으로 가자며 몸이 아픈 형과 동생을 데리고 역 근처로 나왔다. 순간 사위스러운 예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숨이 막혔다.

‘매제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수원으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어머니는 선뜻 무슨 일이냐 묻지 못하는 나에게 여동생의 사고 소식을 털어놨다. 다른 형제는 이미 그 소식을 듣고 일요일 새벽에 수원을 다녀왔지만 시험 치를 내게는 아무런 내색을 안 한 것이다.

‘ 형이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데 여동생마저 사고라니….’

어머니는 수원으로 가는 내내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겁에 짓눌려 입을 뗄 수 없던 나는 제발 생명에는 지장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넋이 반쯤 나간 매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3798245?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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