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참 멀리도 왔다_시력 잃은 꼬실이(36)

7154 2011. 3. 8. 09:23

 

그림 Donald Zolan 작

 

참 멀리도 왔다_시력 잃은 꼬실이(36)

 

 

 

 

앞으로도 나는 다른 개를 또 기를 거다. 그렇지만 지금 꼬실이가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가 아닌, 그 애만의 자리가 새로 마련될 거다. 태어나서부터 이날까지 한 번도 개가 없이 살아보지 않은 나는, 죽는 날까지 역시 개와 더불어 살아갈 것이며, 마지막에는 내가 먼저 떠나서 어떤 녀석을 당혹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를 꼭 닮은 딸이 나 대신 토닥토닥 달래 줄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정들고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이 모든 과정이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마찬가지 삶의 길이라는 걸 딸아이는 이해하는 듯하다. 지금보다 훨씬 전부터 그런 기색을 보였다. ‘누구 없으면 못 산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슬기로운 사람으로서,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이별이 행복의 완성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다고 믿는다. 물론 죽음도 이별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다. 꼬실이가 없는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쓸쓸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무섭다. 곱게 자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수시로 눈물을 훔친다. 오래오래, 어쩌면 내가 죽는 날까지 문득 이 녀석을 떠올리며 보고 싶어 미치게 슬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꼬실이가 없어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

‘슬플 일 만나면 실컷 슬퍼하고, 그리우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그리워하지 뭐. 그렇게 풀어내고 이겨내는 거야.’

 

쌕쌕 고른 숨소리를 내며 아주 맛나게 자고 있는 꼬실이. 새까만 털뭉치가 굴러다니는 것 같던 때로부터 참 멀리 왔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때 참 고왔던 젊은 엄마였고, 뒤뚱거리며 동생 챙기노라 여념 없던 내 딸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가. 개가 사람보다 기억력이 더 좋은 경우를 많이 봤다. 아마 녀석은 누나가 저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하던 어린 아잇적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거다. 벼가 일렁이던 들판을 바람같이 달리던 제 모습과 더불어 귀여운 누나의 음성도 기억할 것이다. 행복해서 까르르 넘어가던 그 웃음소리, 왕왕 마주 뛰며 짖어대던 제 소리도 잊지 않았으리라. 참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며칠이건 몇 달이건 혹은 운 좋게 몇 해건 우리에게 허락될 그 동안을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자.

 

‘아가, 어머니는 너를 정말정말정말정말 아주 많이 사랑해! 알지? 너도 그렇다고? 그러엄, 어머니도 알지!’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 반려동물 이야기 원고 모집

http://blog.daum.net/jlee5059/17938856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