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 잃은 꼬실이(35)_머지않았다는 느낌

7154 2011. 3. 7. 08:55

 

그림 Donald Zolan 작

 

 

시력 잃은 꼬실이(35)_머지않았다는 느낌

 

 

 

 

오래 버틸 것 같진 않다. 특별히 더 약해지거나 아파하는 데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지, 어쩌면 내 바람 때문에 그렇게 느끼고자 하는 건지도 모르지.’

시간을 오래 끌면서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보통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지내다가 서로 숨소리 마주 느끼면서 고요히 내 가슴에 얼굴 기대고 자는 듯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이별에의 두려움을 앞서고 있다.

 

 

제일 복 받은 목숨이란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소멸되는 것 아니겠는가. 내 삶에 큰 의미였던 우리 꼬실이, 부디 그런 복을 받았으면 싶은 거다. 죽지 않는 존재란 없다. 헤어지지 않는 관계란 없다. 그 분명한 전제 아래 가능하면 몸이건 정신이건 마음이건 덜 아프고 덜 괴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 아니겠는가. 우리 꼬실이는 천수를 충분히 누렸으니까 얼토당토않은 욕심은 더 부릴 게 없다. 딸더러도 마음의 각오를 해두는 게 좋겠다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시력을 잃으면서 주변사람들이 한결같게 하는 말이 있다. 인제는 더 이상 짐승을 기르지 말란다. 왜 그 아픔을 어떻게 또 겪느냐고들 한다. 나는 그게 이상하다. 함께 살다가 헤어지면 당연히 슬프다. 더구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슬픔의 크기나 종류가 다른 게 맞다. 하지만 그 슬픔을 피하고자 홀로 동굴 속에 앉았다 떠나지는 않는다, 아무도.

 

 

부모가 죽어도 부모처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은사님에게 정을 쏟기도 하고, 동기간이 죽는다고 벗까지 몽땅 외면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자식 앞세우고도 어쨌든 사람은 살아가지 않던가. 내게 올 상실의 아픔을 염려하는 사람들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꼬실이가 함께 한 내 열일곱 해가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했는지 또한 누구나 알고 있다. 더구나 내 딸에게는 아장아장하던 아기때를 갓 벗어나서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자란 애틋한 동생이다. 슬픔을 덮고도 남을 넉넉한 행복과 추억이 있는데 왜 슬픔만 겁내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또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왜 애초에 포기하란 말이냐.

 

 

죽음도 삶의 일부다. 우리가 녀석과 행복하게 지낸 긴 시간이 있었느니 만큼 어쩌면 그 애 죽음을 함께 들여다봐 주는 것도 행복의 일부이자 완성일지도 모른다. ‘잘 가’, 인사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녀석보다 오래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영문도 모르고 돌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게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반려동물 이야기 원고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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