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Donald Zolan 작
시력 잃은 꼬실이(34)_발작
착한 표정으로 싹싹 팔을 핥는 녀석을 내려다보는 가슴이 쓸쓸하기는 해도 견딜 만하다.
“두통이 온다든지…. 아프지는 않을까요.”
“괜찮을 거예요.”
“그러면 됐어요, 아프지 않다면야. 그런데 발작 끝나고 나서는 멍하더라구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테니까요.”
“그것도 다행이라고 해야겠군.”
약을 열흘 치 지어 받았다. 발작에 도움이 된다는 약. 내 소개로 그 병원 다니는 중학교 동창네 노견 역시 두 해 전부터 같은 증세인데 그 약을 먹은 뒤로는 발작이 줄었다고 들었었다. 발작 간격이 잦으면 좋지 않으니 잘 지켜보라고 하면서, 그 동창네 개는 3~4주일 간격이었다고 의사가 굳이 그 집 개 예를 들었다.
‘우리 꼬실이는 이제 처음 시작했는데 뭐, 더구나 그 애는 우리 애보다 네 살인가 다섯 살이나 어리잖아. 처음 시작이 늦은 게, 나이를 더 먹었다는 게 무슨 위로가 된다고 연방 그 생각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깜빡깜빡 토끼잠을 잘 뿐 길게 푹 자지도 않은 녀석이, 밥 달라 간식 달라 골고루 찾으며 잘 먹어 안심이 되었다. 일단 식욕이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 아니겠는가. 내가 원고 교정 하고 있는 동안은 딸이 동생을 보았고, 딸이 과제를 하는 동안에는 내가 끼고 앉아 TV를 보았다. 적어도 몇 시간은 그렇게 평화로웠다. 받아온 약 첫 봉지를 뜯어 먹이고 30분쯤 지났나, 쉬야하고 싶다는 몸짓을 해서 화장실에 데려다 주고 잠시 다른 일 하고 있는데 그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갑자기 덜컥 심장이 떨어져 버렸고, 그러나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 들여다봐라, 엄니는 손이 젖어서 못 가.” 컴퓨터 앞에서 리포트를 쓰던 딸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꼬실이 달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아기 안듯이 젖혀서 안고 나왔다. 역시나 몸은 동그마니 꼬부라져 뻣뻣해 있고, 숨을 묘하게 몰아쉬었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또!’
발작 잦으면 위험하다고 했는데, 아무개네 개는 한 달 한 번 꼴이었다던데, 얘는 왜 하루 두 번이나! 슬프다기보다 약이 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나마 새벽보다 짧게 끝난 게 낫다면 조금 나은 걸까. 정신이 들어 목을 가누게 되자 보이지 않는 눈으로 두릿두릿 사방을 둘러보며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밤새 딸과 나는 번갈아가며 일어나느라 잠을 설쳤다. 녀석이 바스락 움직이기만 해도 무슨 일 있을까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설사 최악의 순간을 맞는다 해도, 적어도 녀석을 혼자 외롭게 떠나게 두진 않겠노라는 각오 때문이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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