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46)_18년, 이 여름이 참 힘들다

7154 2011. 7. 15. 16:28

 

 

 

 

 

꼬실이(46)_18, 이 여름이 참 힘들다

(너도 내게 온 귀한 생명이었다. 무딘 그대에게 호소하고 싶은, 그대로 묻어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간과 반려견의 이상적 교감 이야기.)

 

 

우연히 얼마 전에 봉숭아물로 동생 머리카락을 곱게 염색해줬던 딸은, 요즘 틈만 나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준다. 눈가 털이 조금만 삐쭉 길어도 얼른 잘라준다. 성치 않은 녀석이 귀찮다 버둥댈 만도 한데 녀석은 아주 얌전하게, 심지어는 즐기기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시키는 대로 앉아 있다. 나도 굳이 말리지 않는다. 여길 떠나 저 세상에서 새로운 동무들 만났을 때 추레한 모습으로 있으면 놀림을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차마 그런 말을 딸에게 하진 못하지만 딸도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막둥이 평생 누나가 저렇게 치장을 깨끗하게 하노라고 시간시간 정성을 쏟는 게 처음인 걸 보면 그런 마음이 짐작된다.

 

동호회 아우한테 문자가 왔다. ‘형님, ,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 타서 며칠 아무 것도 안 먹었잖아요. 이번에도 곧 입에 댈 거예요.’ 그이나 나나 안다. 다시는 입맛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그래도 그렇게 걱정하면서 위로하려는 마음이 고맙다. 제 자식이듯 우리 아들을 엄청 예뻐했다.

 

문자를 받은 김에 녀석을 싸안고 아우네 집에 갔다. 그이가 곧 가게 문을 열러 나갈 때라서 그 전에 다녀오고자 함이었다. 의자에 앉아 녀석을 무릎 위에 뉘어놓고 우리끼리 두런거리는데 그 집 막내 개울이가 내가 앉은 의자에 매달려 나를 박박 긁었다. 생전 어디 올라가겠다고 매달리는 애가 아니다. 나나 그이나 개울이 그런 것을 처음 보았다. 아우가 안아서 내 무릎에 올려주었더니 우리 막둥이한테 얼굴 비비며 콩콩 냄새를 맡는지 말을 하는지 하고는 펄쩍 뛰어 내려갔다. 그걸 보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개도 다 제 원수라며 앙칼지게 쫓아내기만 하는 개울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애가 우리 꼬실이다. 그러나 까칠한 꼬실이가 절대 곁을 주는 적이 없어서 저 혼자 먼 짝사랑을 한 지 여섯 해째다. 개울이가 여섯 살이니까. 그런 개울이가 오빠한테 가겠다고 내 의자에 매달린 거나, 저희만 아는 무슨 얘기를 나누는 듯한 행동이나. 이별 인사를 하는 듯 여겨져 울음이 치받았다. 울지 않으려고 요 며칠 기를 쓰고 있는데 개울이 때문에 그만 목이 아파서 침도 삼킬 수 없었다.

 

이 여름이 참 힘들다. 여덟 해 전 여름도 그랬다. 아버지가 더 이상 혼잣걸음으로 뜰에도 내려설 수 없게 된 여름. 부축하는 것조차 귀찮으시다며 소파에만 기대앉았다가 기어이 침대에 누운 채로 보내셨던 여름. 매일 서울로 달려가 아버지를 뵈면서 가뜩이나 싫은 여름이 그렇게 덥고 짜증나고 숨이 막힐 수가 없었다. 갈수록 여위어가는 아버지한테 에어컨 냉기나 선풍기 바람이 언짢을까 싶어서 그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여름을 오빠나 올케나 인내로 버텨내고 있었다. 막둥이 때문에 푸른 숲도 찾지 못하고 집에서 더워 더워 연발하면서 나는 여덟 해 전 여름을 상기하고 있다.

 

여름만 되면 더워서 혀를 길게 빼물고 헉헉대던 녀석이 올해는 전혀 더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가늘게 달달 떨기까지 해서 얇은 수건을 덮어주어야 떠는 걸 멎는다. 나는 그 수건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수건 아래서 이뤄지는 호흡,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숨결에 안도하는 중이다.

 

우리 아들. 평생 사소한 어떤 것도 애먹이는 일 없더니 가는 길에도 나를 편케 해주는구나. 보채지도 않고, 열 펄펄 끓는 적도 없이, 평온한 눈빛으로 그윽하게 나를 향해 누워서 저리 고른 숨 쉬고 있으니,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 자꾸 콧등이 시큰하다. 요 며칠 도통 뽀뽀를 안 해준다고 누나가 서운하다던데, 오늘은 누나 돌아오면 찐하게 뽀뽀 한 번 해주지 않으련. 더불어 어머니한테도, ?’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오해 없으시길요.)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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