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실이(51)_현실과 비현실
(너도 내게 온 귀한 생명이었다. 무딘 그대에게 호소하고 싶은, 그대로 묻어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간과 반려견의 이상적 교감 이야기.)
지금 여기가 현실이야? 진짜로 모든 게 진짜야?
이런 소리를 하는 때는 대부분 여름이다. 더위도 싫지만 특히 그 망할 놈의 해를 싫어하는 나는, 싫어하는 그 모든 것을 참으면서 무사히 넘어가야 한다는 과제 아래에서 자주 그 질문을 한다. 즉 가짜였으면 좋겠다는, 눈을 딱 뜨면 찬바람 무서운 겨울 한가운데 꿈 한 개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 때가 아닐까 하는 미친 듯한 바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딱히 싫은 때만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도 나는 같은 질문을 수시로 한다. 너무 좋아서 꿈일지도 모른다는 무섬증이 부추기는 질문이다. 즉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아니라 현실이 아닐까 봐 겁이 나서 조마조마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꿈이어도 좋으니 제발 깨지 마라-굳이 바람으로 분류하자면 이런 바람이랄까.
요즘 나는 쉼 없이 이 질문을 한다. 물론 빌어먹을 여름이기도 하고 망할 놈의 해가 메롱 혀를 내밀며 약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리고 요 며칠 장마라고 비가 퍼부어 주어 살맛 난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요즘 하는 질문-의구심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다. 내가 자꾸 그 질문에 몰입하는 이유는, 우리 막둥이 목숨이 간당간당, 부여받은 목숨 길이의 한계에 다다른 것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이별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이게 현실일까, 진짜 진짜일까, 눈 번쩍 뜨면 마당을 마구 뛰어가는 어린 막둥이의 털이 찰랑거리고 나는 아직 새파랗게 젊은 엄마는 아닐까, 자꾸 생각이 그쪽으로만 흐른다.
그러나 이게 비현실이라면, 진짜는 녀석이 기운 넘치는 어린 강아지이고 내가 젊은 엄마라면, 지나온 길고 고단한 여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는 말이렷다.
‘아서, 아서, 그건 못 참아.’
컴퓨터 워드를 다루듯, 포토샵을 다루듯 비현실을 잘라내기 해서 현실 어디쯤에 붙이고는 시치미를 떼며 내가 원하는 현실만 모으고 만들어 살 수는 없을까.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와 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오해 없으시길요.)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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