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62)_빈자리(2)

7154 2011. 8. 4. 17:10

 

 

꼬실이(62)_빈자리(2)

 

 

 

밥집에서 나와 마트에 들러 몇 가지 장을 보면서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항상 딸은 동생을 데리고 집에 있고 나 혼자 마트에 왔었다. 둘이 같이 왔을 때도 딸은 동생을 안고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진열된 그릇을 깨고 엎는 꼬맹이들은, 바락바락 악을 쓰며 모든 사람 귀를 틀어막지 않곤 견딜 수 없게 하는 꼬맹이들은 막지 않으면서 팔에 얌전히 안겨 있는 작은 개는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딸과 나란히 카트를 밀며 돌아다녔다. 누구에게 막둥이를 맡긴 것도 아니니까 서두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웃거리며 구경도 하지 않고 얼른 소용되는 것만 골라 나왔다. 셋이서 같이 다닐 수 없다는 사실에 자꾸 화가 나기만 했다.

 

빼다지 침대 밀어 넣고 컴퓨터 책상 사이 빈 공간에 누워 팔을 쭉 뻗으려면 어디고 걸려 스트레칭 한 번 할 수 없는 코딱지만 한 집. 더위에 더 덥다 더 덥다 신경질만 냈더랬는데, 막둥이 녀석 보내고 돌아오니 왜 이렇게 집이 넓냐. “어디건 다녀와서는 화장실 데려다 주고, 나오면 물그릇 앞에 데려다 주고, 그런 거 안 하니 할 게 없어요.” 딸이 울먹거렸다. 밥그릇 물그릇 설거지해 치우고, 화장실 앞 패드 치우니까 그만큼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휑한 건 정말 아니다.

 

딸이 너무 풀이 죽어 있었다. 내 딴에는 기분전환이라도 시킬까 하고는 별 생각 없이, “제주도에나 갈까.” 물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다녀온 딸은 제주도 구석구석을 좀 더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 있다는 테디베어 박물관도 가고 싶어 했다. 둘이서 제주도 다녀오려면 얼마나 들까. 까짓 것, 눈 질끈 감고 무리를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 싶었다. 그런데 딸은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의외였다.

?”

강아지 때문에 갈 수 없던 데는 가고 싶지 않아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맞다, 제주도 가고 싶다면서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이나 나나 한 번도 우리 둘이 같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집에 남아서 막둥이를 봐야 할 테니까. ‘내가 태연하게 밥집에 들어가 밥 시키는 것에 화가 났던 것과 같은 기분이겠구나.’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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