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62)_빈자리(3)

7154 2011. 8. 8. 18:21

 

 

 

 

 

꼬실이(62)_빈자리(3)

 

 

 

집에 있기 싫어서 바깥을 빙빙 돌았다.

마침 볼일도 있어 핑계 김에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막둥이가 떠났다니까 대뜸 얼른 다른 강아지 한 마리 데려오란다. 그들 딴에는 위로인 걸 안다. 나나 딸이나 막둥이가 죽어도 다른 개를 기를 거라고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해 왔었다.

 

아끼던 개가 죽고 나니까 정 떼는 게 무서워서 다시는 개를 안 기르게 되었다는 사람이 많은 게 이상스러웠으니까. 그런 우리말을 믿은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위로라는 게 바로 얼른 다른 강아지 데려오라는 소리였다. 빨리 다른 데 정을 주어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는 배려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막둥이 보낸 지 겨우 하루 지났다. 장난감이 부서진 게 아니라 사랑하는 식구가 죽은 거다.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부재를 받아들이고 극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설령 시간이 지나 다른 개를 기르게 된다고 해서 우리 막둥이 자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아이 자리는 거기에 그대로 있고, 새 아이 자리를 새로 마련하는 거다. 지우개로 지우듯이 싹싹 지워질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그들이 권하는 위로의 방법, 해결 방법은 차라리 잔인하다. 막둥이를 우리 식구로 인정하지 않는 증거이며, 사람 아닌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새삼 정나미가 떨어질 지경이다.

 

꼬실이가, 우리가 다른 애를 데려오는 걸 좋아할까요? 만약 싫다고 하면 평생 더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을 용의도 있어요. 다른 집 강아지를 가끔 보고 귀여워해 주면 되니까요.”

글쎄, 질투심이 많긴 했지만 머리는 좋은 아이잖아. 더 이상 우리 곁에 자기가 없는 상황을 이해 못할 아이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자기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로하고 지켜줄 동생 들이는 걸 말라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까요?”

아무렴. 꼬실이가 우리를 좀 위했니. 그러니까 분명히 그렇게 하라고 할 거야. 대신 저를 잊으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으려 하겠지.”

어떻게 꼬실이를 잊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꼬실이랑 마지막으로 자면서 자꾸 미안했어요. 그 동안 잘못했던 게 자꾸 생각났어요.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키거나 고집 부린다고 야단 친 것, 말 안 듣는다고 심지어는 고 조그만 걸 때리기까지 했거든요. 물론 진짜 아프게 때리지도 않았고 얼른 사과하고 달래주기도 했지만, 놀라서 부들부들 떨거나 풀이 죽곤 했던 게 생각나서 정말 괴로웠어요. 하지만 자고 나니까 더 이상 그런 생각은 안 나더라구요.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짐을 했지요.

꼬실이는 이해심 많은 애니까 제가 진짜 미워한 거 아니라는 건 알 거거든요. 그렇게 다 이해하고 용서했는데 제가 자꾸 잘못한 것만 생각하면서 미안해하면 싫어할 것 같아요. 좋은 추억도 많은데 왜 미안했던 것만 기억하냐고 따질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았던 것만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나요. 사람들은 죄다 저더러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요. 얼굴을 보고 직접 말하기도 하고 문자로도 그렇게 말하고요. 그런데 저는 슬퍼하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너무 보고 싶어서 말예요, 보고 싶어 죽겠는데 볼 수 없는 게 화가 나고 속이 상해요. 늘 그랬잖아요. 개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으니까 꼬실이가 먼저 죽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리고 지난번에 발작하고서는 진짜 각오를 단단히 했거든요. 그런데요, 어머니. 아무리 각오하고 그럴 거라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제가 처음 기억이라는 걸 한 때부터 늘 꼬실이가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당연히 꼬실이가 있을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나 봐요. 그러니까 꼬실이가 없는 게 너무 이상하고, 너무 보고 싶어요. 자꾸 자꾸 보고 싶어요. 늘 내 옆에 있던 애가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녜요?”

나도 그래. 나도 똑같은 마음이란다. 나도 보고 싶어 미치겠고, 나도 막 화가 나. 나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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