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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보면서 느끼는 소회.

7154 2013. 1. 7. 08:53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문을 두고 악질이다, 나쁘다를 연발을 한다. 글쎄.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기에 간략하게 소회를 남겨본다. 그의 말대로 그의 그런 행위가 애국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과거 형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이러한 일련의 고문행위가 과연 불법적이었던 사례가 있었느냐를 고민을 해보면서 이근안의 행위에 대해 면책권을 부여를 해볼까 하는 것이다. 


이근안이 살던 시기는 전형적인 군사정권 시대이다. 그럼 군사정권 이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고문행위가 없었을까? 이승만 정부 시절은 학살의 시절이었다. 물론 시대가 낳은 학살이기도 했다. 남한도 북한도 학살에 미쳐 살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사람 죽이는 것이 예사였던 시절이었으니, 고문이 없었다고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로 이승만 정권 당시에도 조봉암같은 애들을 죽인 사실등이 존재한다. 물론 그 시대에 있었던 일련의 고문사건이나 법치살인행위등은 현재에 조명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승만이라는 인물 자체가 대중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떄문이다. 좌에서도 우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 역시도 이승만은 좋아하지 않는다. 말을 지독히도 듣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니까. 



제헌의회 이전의 시대라고 하면 이제 일제시대인데, 일제시대는 비교적 법에 근거한 통치가 확립이 되어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통치체제에 대해서는 비난을 가할만한 부분이 없다. 단지 일경산하에 의해 고문행위등이 이루어졌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는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의장을 맡았던 전라도 익산의 신기남의 부친인 시게미쓰 구니오가 학생독립운동을 행하던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군도를 남발하여 손발을 토막내고 했었던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이 당시의 고문 역시도 특별히 법에 저촉이 되거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피해자는 지금도 장애인으로 살고 있음이 들어났다. 


그럼 그 이전의 조선시대는 어떠했을까? 이를 볼 수 있는 대목이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조병갑 수탈 사건이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증조 할아버지로서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수탈과 고문사건이 극에 달했던 사건이기도 했다. 해당 고부군수의 전횡에 맞서기 위해 이제 들고 일어난 것이 그 유명한 동학폭동으로서 전봉준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이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는 명백하다. 돈 뺐기고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헌데 조선시대에는 그것이 특별하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었지 싶다.


왜냐하면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 직전에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조선의 왕인 선조 임금이 전라도 선비들과 전라도 의병장들을 친히 친국을 하면서 정강이뼈를 박살내는등의 일련의 고문행각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즉, 고문이 과연 불법인가에 대한 고민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으로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시대까지 역추적을 해보았지만, 딱히 고문이라는 행위자체에 대해 고문을 가하는 사람들이나 정부가 이를 문제시 했던 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확인이 된다. 당연히 고문기술자라는 타이틀을 얻고 있는 이근안 역시도 당시에는 일상화된 고문을 행하여 수사를 진행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에 어렵지 않게 도달을 한다. 


김근태가 그에게 시대가 만든 죄악이다라고 했는데, 시대가 만든 죄악이라는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는점이, 군사정권 이전 시대에도 고문을 행한 사실은 들어난 역사 자료만 들춰봐도 수도 없이 출현을 한다. 본인이 위에 열거한 사실들만 보아도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양민학살과 수탈, 고문행각은 당시에 딱히 큰 잘못이나 나쁜 행위로 볼만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문이 없어진 시기는 전두환을 지나 노태우 정권때부터 서서히 고문에 대한 여론이 악화가 되어지면서 수사진행상에 이루어지는 고문행위등을 근절시키는 노력등이 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암묵적으로는 계속해서 행해졌었고, 김대중 정권 당시에도 검찰수사관이 물고문을 행하였던 사실이 또한 존재하기도 했었다. 



고문은 김근태의 말만 따나 시대가 만든 죄악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전부터 한반도, 그리고 인류사에 전해 내려오는 피의자 심문수단의 가장 전형적인 수단이었을 뿐이다. 즉,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의 고문을 죄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려면 그 이전 시대에는 고문이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되돌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전혀 입증을 할 수가 없다. 


고문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두고 가치판단의 대립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이근안이 그 시대에 행했던 고문이 죄악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사안이 아니다. 그 시대에는 고문 그 자체도 수사의 한 방법이었을 뿐임으로. 물론 이런 행위는 죄악도 아니지만 이근안의 말처럼 애국 역시도 아니다. 흔한 수사기법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고문을 애국심을 가지고 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이 될 수 없는 말임으로. 


그리고 김근태는 이근안의 고문덕택에 축구를 그렇게 좋아했었던가 보다. 이 정도면 고문이 아니라, 마사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조기 축구회의 원톱 스트라이커라고 알려진 김근태의 고문휴유증에 대해서 전세계 의학계가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악마적인 고문으로 극심한 휴유증을 가진 사람이 조기축구회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었는가?"를 추적을 해보면 인류 의학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는 개인적인 소회를 풀어본다. 




출처 : 革新韓國의 大新羅魂
글쓴이 : 大新羅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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