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시력을 잃은 꼬실이(6)

7154 2011. 2. 1. 06:38

 

 

 

 

 

시력을 잃은 꼬실이(6)

 

 




징검다리 연휴라 그런지 서울 들어가는 길 말고 반대로 나오는 길도 차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때보다 조금 더 기다리게 되어 딸을 태우고 다시 집에 돌아오기까지 아마 20분쯤 걸렸을 거다. 그런데 딸애가 문을 밀자 바로 앞에 녀석이 서 있었던 것.

“어머, 깼어?”

나도 같이 놀라서 딸이 가방을 내려놓는 사이 먼저 꼬실이를 달랑 안았다.

아이가 돌아보더니, “심통이 잔뜩 났네요, 볼이 퉁퉁 부었어요.”그랬다. 내가 미안하다며 볼을 비벼도 자꾸 고개를 돌리고 내리라고 버둥거리기만 했다. 바닥에 내려놓으니 허둥거리며 누나한테 달려가 안겨서는 볼이고 입이고 싹싹 핥아댔다.

“어어, 깨 보니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무서웠어?”

누나가 달래면서 볼기짝을 토닥토닥 두들기자 누나 턱밑에 제 머리를 밀어 넣고는 어지간히 속상했는지 꾸웅 울었다. 보고 있자니 이산가족 만나도 그런 게 없겠다 싶은 게 우스워서 일부러 내가 다시 빼앗아 안았다.

“미안해. 그렇게 금방 깰 줄 몰랐지. 화 풀어. 자, 엄니한테도 뽀뽀.”

이러고 달래는데 절대로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목을 비틀어 외면하면서 그저 자꾸 버둥대기만 했다.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누나한테 가서는 한숨까지 푹 쉬는 게, 누가 보면 내가 어지간히 구박이라도 한 줄 알겠다. 그렇게 내가 데려오면 버둥대며 누나한테 보내 달라 하고, 누나한테 가서는 얼굴 파묻고 꽁꽁 일러대고, 재미있어서 여러 차례를 빼앗아 왔더니 그때마다 너무 노골적으로 싫다고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렇게 삐친 채로 두 시간도 더 지난 것 같다. 언제나 그랬다. 목욕을 시켜도, 병원에 데려가도, 어쩌다 목소리 한 번 높여도, 그 즉시에는 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내게 매달려 있다가도 누나만 돌아오면 달려가 연방 뒤를 힐끗거려 나를 훔쳐보며 꽁알꽁알 일러바치곤 했다.

아무래도 내게 제일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싫은 건 다 시키고 하자고 몰아붙이는 게 나니까 당연히 그렇다. 저 아픈 것 생각하지 않고 내가 병원 데려가 주사 맞히는 것만 싫을 테고, 먹고 싶은 대로 다 줄 수는 없으니까 빈 그릇 핥고 있어도 모른 체하는 등등 그런 게 제 딴에는 고까웠을 거다. ‘어쩌느냐,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법.’

그래서 나보다도 아버지를, 누나를 더 찾는다. 그러나 급할 때면 나만이 자기를 지켜준다는 것도 안다. 천둥 번개 치면 덜덜 떨면서 꼭 나한테 온다. 누나가 안고 토닥거려도 기어이 나한테 달려와야만 한다. 꼬르륵 뱃속이 요동을 치고 설사를 할 때도 내게 와 붙어 눕는다. 사람이나 개나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평소에 성가시게 하는 어머니가 썩 달갑지 않으면서도 정작 가장 자기를 위하고 지켜줄 수 있는 건 어머니밖에 없다는 것, 그걸 딸이나 꼬실이나 다 아는 거다.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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