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8)

7154 2011. 2. 9. 10:18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8)

 

 

 

 

 

 

이유 없이 심란할까 마는 전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을 바장이는데 요사이 눌러둔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당신은 얼마 전 남해 모 사찰로 기도하러 간다며 자명종을 새벽 세 시로 맞추려고 한참 더듬거렸다. 당신에게 시계를 빼앗다시피 넘겨받을 때 치솟던 짜증이라니…. 마른 나문재 타오르듯 한 세월 아래 무심히 당신을 유기한, 죄민스럽고 갈급해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짜증이었다.

 

그날, 친하지 않은 새벽이었거늘 안방에서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달랑 손가방 하나 챙겨들고 나선 당신에게 여비 있느냐 물으며 지갑을 꺼내는 사이 당신은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손부끄러운 지폐를 민망히 쥐여 주고 방으로 들어왔다가 어두운 길이 마음에 걸려 다시 나갔더니, 당신이 사라진 어스름한 골목이 혀를 끌끌 찼다. 

 

 

정오경 시골로 내려간다는 당신에게 오늘 아침에도 상습적으로 여비 있느냐 물었다. 짧은 한마디로 “있다.” 한다. 이 단호한 어투는 괜한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당신이 달라고도 하지 않을 테고 형편 또한 안 되는 것을 중지도 알고 당신도 안다. 애초 싹수없이 자란 중지는 아니었으나 어찌하다가 삼불효(三不孝)의 애옥살이를 하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발빈(拔貧)하기를 바라지만 늘어가는 청승이요, 오그라지는 팔자다.

 

 

당신과 얼마큼 더 유장한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불혹 중반의 헛살이가 깊이 들지 못하는 잠처럼 뒤숭숭한데 소사역사를 휘젓는 바람이 뒷주머니 지갑 속으로 파고들어 위로하듯 공갈빵을 굽는다. 오늘따라 전철이 더디어 자꾸 시선이 한 곳으로 미끄러진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을 당신이, 건너편 소사동 한 건물에서 늙고 야윈 얼굴로 어른댄다.

 

왜 이렇게 눈에 띄는 모든 정경이 쓸쓸한가…. 4월은 저만치서 분분해 오는 것을.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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