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18)

7154 2011. 2. 24. 10:34

슬픈 가운데

이승훈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손가락처럼 아들-딸-아들-딸-아들이었다

나는 가운뎃손가락인 중지였다

어느 해 누이가 떠나고

다음 해 형이 세상을 떠났다

누나 하나, 남동생 하나 남은 나는

또 중지가 되었다

날마다 내 가운데가 아팠다.

 

 

 

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18)

 

 

피를 말리던 두 번의 뇌수술을 거친 후 형은 마치 회복된 사람처럼 근 1년 반 정도 직장을 더 다녔다.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사실을 알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동안 온 가족은 의사의 오진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10년이든 20년이든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지낼 것만 같았다.

 

검질긴 암세포는 그러나 온몸으로 퍼져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형은 통곡처럼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에 실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집을 떠나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형은 나날이 악화하였다. 몇 달간 일반병동에서 버티다가 끝내 우리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자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잔인하리만치 이성적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마는가 싶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의 병동인 호스피스 병동은 일반병동 뒤편에 마련되어 있었다. 구름다리처럼 이어진 복도를 따라 형을 뉜 침대를 밀며 건너던 그 순간은 내가 마치 형을 저승길로 데려가는 심정이었다. 형은 아직 자신이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셨으니 형제 가운데 누군가 가족력의 화를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나였다. 외모든 성격이든 나를 일러 씨도둑은 못한다고 할 만큼 당신 닮기를 한 내가 아닌가. 노모를 생각해서라도,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떠나고 형이 남았어야 할 숙운이 도대체 어디서 바뀌었을까.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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