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닌토 음악과 함께하는 가족별곡(20)
형은 나에게 절대 채울 수 없는 빈자리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별의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다시 만날 날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세월은 오늘도 나를 형 가까이 좀 더 데려다 놓는다.
소사역 40계단을 막 오르려는데 전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이 마치 출발 총소리라도 들은 듯 일제히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아슬아슬 팔락이는 치맛자락을 나 몰라라 하는 여인들도 있다.
무에 저리 급하기도 할까 하다가 얼치기 생각을 거두어들인다. 포박당하듯 몸을 끼워야 하는 출근길 전철, 그 치열한 삶을 속 터지게 살아온 위인이 알기나 하겠는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의자에 앉았다. 비상구가 없는 거 같아 멀미나는 세상, 그에 휘둘리기 싫어 언제부턴가 전철 한 대 정도는 일부러 그냥 보낸다. 운 좋은 날은 역사에서 클래식이 흐르기도 하는데 커피를 홀짝이며 가만 듣노라면, 지붕이 새면서 점점이 받쳐둔 양푼으로 떨어지던 어릴 적 그 빗방울 소리의 정서가 떠오르기도 한다.
먼발치 춘덕산 자투리에는 어느덧 가을이 피어오르고 있다. 무정한 시선이 왼편으로 미끄러져 춘덕산 아래 성가병원 건물로 떨어진다. 언제 보아도 저놈의 건물은 험하게 솟은 암석처럼 보인다. 하필 전철 타는 방향과 마주하여 때마다 마음을 들썽케 한다. 형이 요절한 병원이다. 훗날 당신의 나라에 들더라도 그와 가까이 있고 싶었다. 그래서 종부성사를 집전하던 신부님에게 내 영세명을 주도록 부탁해, 형도 프란치스코 성인 이름을 받았다. 형제의 영세명이 같아서 조금 그렇다는 수녀님이 계셨으나 곧 헤아려주었다.
잠시 비상(悲傷)해진 마음을 깨트리며 전철이 들어온다. 15년 동안 그도 이 전철을 타고 조석으로 내가 오가는 길로 다녔다.
-이승훈 에세이집 「가족별곡」(해드림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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