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꼬실이(42)_生이 다하여 꺼져가는 불빛

7154 2011. 7. 11. 13:37

 

 

 

 

 

꼬실이(42)_이 다하여 꺼져가는 불빛

 

(너도 내게 온 귀한 생명이다! 무딘 그대에게 호소하고 싶은, 그대로 묻어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간과 반려견의 이상적 교감 이야기.)

 

 

너무 기운 없어 해서 병원에 데려가 링거를 맞혔다. 주사 맞는 것 싫어하는 녀석이라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걸 보니 아직 완전히 기운 잃은 건 아니구나 하고 슬그머니 웃었다. 웃을 형편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웃고자 했다. 링거 맞는 동안 누나 무릎에 누워 편안하고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 한은 없나 보지. 나도 그래.’

하지만 조금만 더 있어주면 안 될까. 멀뚱하니 안고 있기만 뭣하여 그 김에 눈을 찌르는 눈가 털이나 잘라준다고 하기에 가위를 딸에게 건넸다.

 

조몰락거리면서 쏙닥쏙닥 털을 다듬으니 기분이 좋은지 웃는 표정을 지었다. 누나에게 모든 것 다 맡기고 안심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자는 건지 생각에 잠긴 건지.

아무리 링거 맞으면 뭘 하냐, 먹지를 않는데.’

 

집에 와서도 여전히 아무 것도 안 먹는다. 그 좋아하는 오리고기 갈아 볶은 거며 한우를 익혀 주어도 죽어라 목을 뒤로 빼며 거절한다. 이름 하여 거식증인가 보다. 그러니 혼자 바로 서지도 못하고 자꾸 풀썩풀썩 주저앉는다. 살살 꼬드겨 어떻게라도 한 입 먹게 하려던 딸내미가 드디어 발칵 화를 냈다. 그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사실 나도 꼴 보기 싫고 아니꼽고 화가 나지만,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 봤자다.

 

답답한 노릇이다. 링거 맞았던 팔을 들고 세 발로 버티자니 가뜩이나 풀린 다리가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꺾인다. 주사바늘 들어갔던 팔이 아픈 모양이다. 하긴 이른 아침에 허벅지 튼실한 근육에다 광견병 예방접종을 맞고 돌아오면 밤까지 종일 세 발로 절뚝절뚝 걷곤 하던 엄살쟁이 녀석이니 지금이라고 다를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모습 보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오늘 하룻밤 자고 나면 나을 거야. 그리고 한잠 자고 나면 입맛 돌아 조금 먹지 않을까.’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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