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실이(49)_하나씩 내려놓다
(너도 내게 온 귀한 생명이었다. 무딘 그대에게 호소하고 싶은, 그대로 묻어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간과 반려견의 이상적 교감 이야기.)
자꾸 마음이 캥겨 어머니 산소에 갔다. 장마다. 내 키만큼 자란 풀이 산소에 접근을 하지 못하게 했다. 할 수 없이 멀찌감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엄니, 곧 꼬실이 갈 것 같으니까 잘 데리고 있어요.’
알아들으셨을 게다.
왜 갑자기 거기가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산소에서 떠나 그냥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느닷없이 떠오른 그 길로 방향을 틀자 딸이 어리둥절해 하더니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그 토방 마당을 몹시 좋아하던 막둥이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일주일 전부터 자면서 침을 많이 흘려 누웠던 자리가 온통 얼룩이었다. 그게 어제부터 색깔이 조금씩 짙어져 왜 그런가 했더니, 단순히 침이 아니라 피다. 입을 벌렸더니 잇몸이 풀어져 잇사이로 피가 비친다. 피와 침이 섞여서 묽은 핏빛으로 자리를 적시고 있다. 빠진 것 하나 없는 이가 더이상 씹는 역할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는 건가. 긴장해 있던 근육이나 장기가 이완되고 있나 보다. 딱 어디랄 것도 없이 잇몸 전반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데도 녀석은 아픈 기색이 없다. 손으로 건드려도 말똥말똥 보이지 않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 아기 같은 표정을 보자니 도대체 어디까지 다 내놓고 떠날 것인지 궁금해진다.
“내일 아침에 머리 감지요. 어차피 얘 때문에 일찍 일어날 거예요. 또 깨울 텐데요 뭐.”
딸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나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들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지나 혼자 앉아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된다. 우리는 서로, 각오하자고 하고 있다. 며칠이 될지 몇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녀석이 떠날 때가 오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지금 같은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는 겐가. 몸도 못 일으키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뽀뽀도 못하면서도 내내 이렇게 있으면서 밤마다 새벽마다 누나를 깨우고 딸내미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나도 깨나고, 그렇게 살게 되리라 믿는 걸까. 그러고 싶은 걸까. 녀석은 하나씩 내려놓고 있는데 우리는 또 하나씩 주워담고 있나 보다.
결국 다 허망하고 말 것을.
- 김은미 반려견 에세이집 「꼬실이」(해드림) 중에서
(이 책은 상업적으로 기획된 책이 아니라 반려견 ‘꼬실이’와 18년 함께 살아온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오해 없으시길요.)
http://www.yes24.com/24/goods/4521672?scode=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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