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엄니이야기 20-30

7154 2013. 8. 28. 08:11

 

 

 

 

당신은 모르지요? 제가 매일 아침 전화를 하면서 어두워진 당신 가는귀를 살핀다는 것을. 당신이 대답을 잘하면 일부러 시시껄렁한 이야기조차 늘어놓는답니다. 당신은 얼른 끊으려 하지요. 습관처럼 전화비 걱정을 하면서…. 당신은 평생 그리 살아왔습니다.(엄니21)

 

 

 

당신이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저는 당신께 못 다한 표현을 쉼 없이 하고 싶답니다. 깊은 밤이에요. 시골 밤은 도시보다 훨씬 깊지요. 그런 곳에서 깊이 잠든 당신을 흔들어 깨워, 또 무엇인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싶은 저입니다.(엄니22)

 

 

 

동네 어른들이 주변에 있을 때 전화 속 당신 목소리가 커진 이유를 저는 압니다. 제 전화가 귀찮은 척 하면서도, 때마다 안부 전화 받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목청을 돋우시는 게지요. 제 가슴에서조차 외롭지 마세요. 혼자 지내시게 해서 참 죄송합니다. (엄니23)

 

 

 

아미, 매일 드리는 전화가 싫은 건 아니죠? 목소리를 통해 당신 컨디션이이며 기분을 느껴 보려고 전화를 드리지만, 어떤 때는 혹여 고령의 당신을 감시하는 것으로 느껴질까 봐 조심스럽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귀가 참 맑으셔서 좋습니다.(엄니24)

 

 

 

배가 고플 때 당신이 생각납니다. 세상살이가 두려울 때도 당신 생각이 납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놨을 때도,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때도 당신이 생각납니다. 석양이 수평선 끝에 매달려 있을 때도, 서글픈 당신이 생각납니다. (엄니25)

 

 

 

아스팔트에 금이 가도록 매미가 운다. 삼십대였던 딸이 떠나고 채 눈물이 마르기 전에 부선망(父先亡)한 사십대 장남이 떠났을 때 어머니도 저 매미처럼 온몸을 떨며 밤낮으로 울었다. 입추가 지난 이 깊은 밤에도 잠도 없이 매미가 운다.(엄니26)

 

 

 

노모가 시골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어나면 만질 게 있기 때문’이랍니다. 마루와 토방과 마당이 있는 시골집, 눈 뜨면 사방천지 하늘과 풀과 나무. 아침 식사 전 텃밭의 오이며, 고추도 따고…. 노모가 시골에서 지내길 원하는 까닭입니다.(엄니27)

 

 

 

당신은 쥐코밥상에서도 아들의 권위를 지켜주었습니다. 금방 차려도 밥상에는 언제가 온기가 있었습니다.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차려준 밥상 앞에서 아들은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 앞에서만이라도 기를 펼 수 있었습니다.(엄니28)

 

 

 

시골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떠나올 때, 언제부턴가 홀연히 슬픔이 남았습니다. 백발의 친정아버지를 두고 대문을 나서는 딸의 눈물 같은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 즈음 어머니가 아닌 노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갈수록 종양처럼 커질 그것입니다.(엄니29)

 

 

 

 

노모가 TV를 켜둔 채 잠이 들었습니다. 방문을 들어서는 내가 깜짝 놀랄 만큼 볼륨이 높습니다. 가는귀가 어두워져, 시끄러운 볼륨에도 잠을 잘 주무신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엄니30)

(당신은 사람 소리처럼 시끄럽게 들리라고 크게 틀어놓는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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