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엄니이야기31-40

7154 2013. 8. 29. 16:05

 

 

 

아무리 요즘 세상이 험악해도, 여전히 시골에서는 대문을 열어둔 채 잠이 들기도 합니다. 대문 자체가 없는 집도 허다합니다. 있어도 장식용에 불과하지요. 가는귀가 어두운 노모가 홀로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그곳을 저도 사랑합니다.(엄니31)

 

노모와 신호등 앞에 섰습니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면서 맹인 신호음이 울립니다. 노모는 멈칫거리더니 급히 가방을 뒤적입니다. 가는귀가 어두워 그 신호음을 핸드폰 벨소리로 착각한 것입니다. 노모와 나는 허둥대며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엄니32)

 

여전히 팔순 노모에게 아침상을 받고 싶습니다. 된장국 있는 아침상이 효성스럽지 아니하게 그립습니다. 요 며칠 위통을 심하게 느낍니다. 한때 말술을 마셨던 터라 은근히 걱정되지만, 제발 노모 앞에만 어찌 되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엄니33)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 혹은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안갚음’이라 하고, 자식이나 새끼에게 베푼 은혜에 대하여 안갚음을 받는 일을 ‘안받음’이라고 합니다. 안갚음도, 안받음도 모르는 노모입니다.(엄니34)

 

40대인 채 고향에 묻힌 큰아들, 시골에서는 그가 늘 함께해준다고 믿는 당신입니다. 서울에서 아프던 몸도 시골만 내려가면 다 치유되는 그 사랑을 저도 사랑합니다. 당신의 큰아들을 저도 눈물 나게 사랑합니다.(엄니 35)

 

 

아미, 무참하게 저는 나이만 먹었습니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면 부끄러움을 잔뜩 안고 돌아옵니다. 코흘리개 때 봤던 아이들이 어느덧 중장년이 되어 연로한 부모를 극진히 안갚음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 할 말이 없습니다.(엄니 36)

 

 

당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이 토막글 편지를 당신을 위한 기도로 받으실 겁니다. 당신의 건강과 평화와 우리 시간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당신을 위해 이처럼 매일 기도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은총이지요.(엄니 37)

 

 

어머니, 우린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요? 빈자소인이 되어 상처를 자주 받기도 하였는데, 정말 가난은 가까이 할 게 못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 가난 때문에 당신을 더 애틋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참 치열하게 사셨어요, 감사합니다.(엄니 38)

  

 

무슨 말을 건네도 듣지 못한 채 앉아 있는 당신은 얼마나 가엾어 보이는지요. ‘아, 나이가 들면 저렇게 세상을 하나씩 놓아 가는구나.’ 싶답니다. 세상을 행복하게 갈무리 하도록 섬세하게 챙겨드려야 하는데, 어머니 저는 여적 바동거리기만 하네요.(엄니 39)

 

 

몇 번씩 전화를 걸어도 당신은 또 전화를 못 받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는데도 마당으로, 텃밭으로, 이 방으로, 저 방으로 무심히 다닐 당신이 떠올라 참 아픕니다. ‘마지막 세상 참 잘 살고 간다’고 하여야 할 텐데, 그리 해드려야 하는데…(엄니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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