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엄니이야기40-51

7154 2013. 8. 30. 09:22

 

 

얼마 전 시골에서 올려다 본 별들, 여전히 북두칠성의 막내별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당신이 들려주셨지요, 어린 자식들을 둔 과부가 재혼하려는데 이를 방해하려고 앵돌아진 막내, 북두칠성 끝별. 우리 막내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답니다.(엄니 41) 

 

지상의 불빛이 타올라 영롱한 별들을 삼켜버리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에는 어릴 적 별들이 그대로 소란스럽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골 숲에서 바라본 별들은 제 어릴 적 그대로인데, 도대체 당신과 저는 어디를 다녀왔기에 이처럼 변해 있는 것일까요.(엄니 42)

 

 

다음 세상에서 만나도 당연히 당신의 아들이겠습니다. 제 어릴 때보다 더 찰가난의 당신이라도 머뭇거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음 세상에서는 웃음살 가득 안고 ‘아이구 내 새끼.’ 하며, 어린 저를 이따금 치마폭으로 감싸주세요.(엄니 43)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들일 것입니다. 다만 어머니, 제가 마당으로 들어설 때 ‘아이구, 우리 아들. 학교에 잘 다녀왔는가.’ 하며 토방에 선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형이 있고, 누나가 있고, 동생이 있어도 당신 부재는 빈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엄니 44)

 

 

엄니이야기 45-당신 앞에서 다른 형제들 기억은 상막할 뿐이니 참 이상하지요? 왜 당신이 나오는 제 기억 속에서는 다른 형제들은 안 보이고 저와 당신 둘 뿐일까요. 저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었는데, 왜 제가 어머니에게 막내처럼 보이는 것인지요.

 

 

엄니이야기 46-아랫녘에는 강더위가 여전하다는데요, 여름날 아침이면 종종 된장국이 생각납니다. 대밭 그늘 와상에서 뜨거운 호박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고 학교로 내달리던 그때, 아침 등교를 챙기느라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힌 당신이 있었습니다.

 

 

엄니이야기 47-당신과 저, 서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요? 얼마 전 제가 물었지요. “제 어릴 적 기억 가운데 어떤 것이 있으세요?” “먹고 사는 데 바빠, 너희 스스로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 네 어릴 적 기억이 별로 없다.” 순간 당신 눈가가 갈쌍해지더군요.

 

 

엄니이야기 48-어머니, 한 세상 살아보니 우리 어릴 적 가난한 시절이나 지금의 풍요로운 인터넷 문명시대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설혹 다르다 할지라도 죽어서는 다들 잘 입고, 잘 쓰고, 잘 먹은 몸뚱이나 패째게 살아온 인생이나 같겠지요.

 

 

엄니이야기 49-지금 내 나이보다 한참 젊었던 노모를 생각한다. 모진 바람살 막아내며 어찌 자식 다섯을 홀로 감당하였을까. 저녁뜸 대문을 들어서면 ‘엄니’가 부엌문을 열고 나와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늘 고요했다. 형제들이 있어도 집안은 고요했다.

배가 좀 고팠을 뿐, 날마다 자연과 더불어 살다시피 한 내 어린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정이 갑니다. 삶의 향기가 그때가 더 그윽했습니다.

 

 

엄니이야기 50-두어 해 전만 해도, 함께 걸으며 부축을 할라치면 노모는 싫은 듯 내 손을 뿌리쳤다. 아직 건재하다는 자존심이었다. 시골에 내려갈 때면 영등포역에도 못 따라 나오게 하였다. 하지만 이제 아무 말 없다. 손을 잡아도, 영등포역까지 배웅을 나서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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