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별곡

[스크랩] 엄니 128_자식에게 효도하는 노모

7154 2015. 3. 16.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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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128_자식에게 효도하는 노모

 

 

살갑게 다가온 봄뜻을 따라 노모 마음도 아랫녘을 향해 있다.

시골에서 생활하던 노모가 한 달 전 상경하였다가 지금까지 함께 지내는데, 흙냄새 부스스 피어나는 시골로 어서 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봄처녀처럼 노모의 가슴이 들뜬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집 주변에는 널따란 화원에서 피어나는 꽃 때깔과 향기가 분분할 이즘이다. 봄이야 시골에서 맞이해야 제 맛 아닌가.

아침부터 외출 채비를 하면서 노모가 화장을 한다. 어디 갈 거냐 물으니 살 게 있어서 시내 나가신단다. 어제 잇몸 약 이야기를 꺼낸 터라 종로3가나 5가 약국에 다녀올 모양이다. 부천 역곡에서 종로까지 노구를 이끌고 다녀오기에는 다소 염려스러워 가까운 약국에서 사다드린다 해도 한사코 나가겠다고 하여 말릴 재간이 없다. 날씨도 포근하니 바람도 쐴 겸 운동 삼아 다녀와도 될 성하다. 수년 동안 잇몸 통증을 견디다 못해 위아래 치아 공사를 한창 중인 나와는 달리, 여든 셋 노모는 마른 오징어를 뜯을 만큼 잇몸도 치아도 튼튼한 편이다. 요즘 잇몸이 다소 아픈 거 같다며 시골 내려가기 전 미리 잇몸 약을 챙기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노모의 화장하는 모습이 정겹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화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영락없는 달걀형 얼굴에다 뭔가를 부지런히 바르고, 문지르고, 닦아내고, 그리고 하는 어머니를 신기한 듯 옆에서 가만 바라보면 “왜?” 하면서 싱긋이 웃던 어머니, 다소곳하면서도 꼿꼿하게 앉아 화장하던 당신이 어느 새 저리 마른 이파리처럼 앙상하고 활처럼 구부러졌을까. 허긴 내게도 구석구석 주름진 세월이 다가왔으니 여든 셋 노모야 오죽할까마는.

 

외출할 때면 노모는 시골에서도 늘 단정하게 화장하고, 옷을 잘 차려입는다. 여전히 노모는 멋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간다. 때가 되면 머리 손질도 하고, 옷가지도 사고, 홀로 사우나에도 자주 다닌다. 설 지나서였을까. 노모는 북적대는 남대문 시장을 찾아가 손수 당신 옷이랑 신발을 사왔다. 가까운 백화점에서 사드린다고 하였으나, 내가 옆에 있으면 당신 마음에 든 것을 편히 고르지 못한다며 남대문으로 나간 것이다. 말이야 그리하지만, 오랫동안 부족하게 살아온 자식 호주머니에서 돈 빼내는 게 불편한 노모는, 내가 해드린다는 무엇이든 “괜찮다”, “싫다‘로 단호하게 막아선다.

 

볼 일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노모와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 인근 신도림역에서 만났다. 디큐브백화점 앞 공원에는 성 페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 축제가 한창이었다.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른 작은 공원에서 노모를 찾으니, 작은 옷 보따리가 하나가 들려 있다. 잇몸 약뿐만 아니라 지난 번 남대문 시장에 가서 봐두었다는 점퍼를 마저 사고 여기저기 들르고 구경하며 다니다 왔다신다. 그런 노모를 보니 가슴이 울컥한다.

 

생각할수록 노모께 감사한 일이 있다. 당신에게 감사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마는, 자식이 곁에서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해도 당신 건강을 스스로 잘 챙기며 지금껏 건강을 유지해오는 것이나, 여전히 멋을 낼 줄 아는 노모에 대한 감사가 봄뜻 찬란한 오늘따라 가슴 깊이 다가온다. 문득 디큐브 공원에서 “어머니 참 감사합니다!”라며 외치고 싶다.

 

당신은 당신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그냥 일상처럼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 받고 주사도 맞고, 침도 맞고 그런다. 특별히 입원해야 할 상황이야 자식들이 챙기더라도, 그 외에는 당신 스스로 약국 드나들 듯 편안하게 병원에 다니며 건강을 체크하고 확인한다. 지금껏 당신이 스스로 자기 관리를 너무나 잘해온다. 그러니 늘 빈한한 처지였던 내게 노모마저 자주 아프거나 그랬다면 내 질곡의 늪은 더욱 깊었을 것이다. 자식이 노모에게 안갚음하는 것이 아니라 노모가 자식에게 효도를 하는 셈이다. ‘감사의 삶’에 대해 묵상하고, 매 순간 감사를 떠올리려는 요즘이라, 노모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 벅차도록 한껏 차 있다.

 

점심은 디큐브 백화점 베트남 국수집에서 하였다. 당신과 함께 간 갈비탕 집에서 갈빗살을 바르고 먹기 편하게 가위로 잘라 당신 앞에 놔드리듯이, 노모와 식사 메뉴를 고를 때면 내가 뭔가 거들어드릴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한다. 식사하면서 노모와 나누는 그 오붓함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챙겨주는 것을 다소곳이 드시는 노모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노모에게는 낯선 베트남 쌈을 말아 당신 앞에 놔드리니, 한사코 손사래를 치지만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문득 저리 건강하게 드실 날이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을까 싶으니 마음이 또 조급하다. 엄니, 당신이 참 고맙습니다.(-엄니128)

출처 : 해드림출판사_sdt.or.kr
글쓴이 : 이승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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